성속 이원론 시리즈(1): 성속 이원론의 뿌리

 창세기와 고대 근동 신화의 차이

 

 

 
 
 

 

성속 이원론 시리즈(2): 왜 에덴에는 성전이 없었을까?

 창세기와 고대 근동 신화의 차이

 
 
 
 
 
 

성속 이원론 시리즈(3): '아담'의 이름 속 숨겨진 의미?

 창세기와 고대 근동 신화의 차이

 

 

 

 

기술 문명의 침공 1: 4차 산업혁명이 온다

 

21세기 첨단 기술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우리의 삶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지만 과연 기술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을까요? 오늘날 기술은 그 자체로 선이고, 선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 기술 문명의 사회 한 복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술 문명의 침공 2: 떠나라!

 

21세기 첨단 기술 문명이 발달된 시대에 우리의 삶은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아졌지만 과연 기술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을까요? 오늘날 기술은 그 자체로 선이고, 선의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 기술 문명의 사회 한 복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책을 읽어야 산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하게 선진국에 진입했습니다.

코로나 방역, 경제 대국, 인구 대국, 군사 강국.. 여러 모로 한국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문화적으로는 크게 뒤져 있습니다.

물론 영화나 대중음악, 드라마 등에서 한류를 만들어 내고 있기는 하지만 인문학적으로나 사상석으로 매우 빈곤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이나 인구 대국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이외에 단 한 개의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만 보더라도 한국의 문화적 수준은 매우 낙후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독서율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철수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 봅니다.

 

 

성경의 예언자와 점술가

 

인간만이 미래의 일을 알고 싶어합니다.

미래의 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은 점쟁이를 통하는 방법이 있고, 성경의 예언자를 통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이 두 가지 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용서’라는 속죄론적 주제와 관련해서 뜨거운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영화입니다.

일부 크리스천은 이 영화를 반기독교적 영화라고 보았습니다만, 이 영화를 기독교 영화로 볼 수는 없어도, 반기독교 영화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 영화는 새로운 종교의 가능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요,

잘만 보면 새로운 기독교의 가능성에 대해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미래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지 생각을 공유해봅니다.

 

 

 

#출처: <일터와 일상> https://www.youtube.com/channel/UCH069-608aF93Z7MXcUrcow

 

#공동발의:

이만열 교수

박철수 목사

강경민 목사

이문식 목사

박종운 변호사

신광은 목사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역사적 인물인 이세벨을 소환하여 두아디라 교회 내에서 암약하는 특정 인물과 그룹을 규탄하신다[계2:20]. 당시 두아디라 교회는 그러한 인물이나 세력을 수수방관하며 수동적으로 이세벨을 내버려 두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과 유사하다. 한국교회가 방관하고 있는 이세벨은 과연 누구인가?

1. 이세벨은 왕의 아내였다.
이세벨은 기원전 9세기경, 지금의 레바논 지역 페니키아 시돈 왕국의 공주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의 7대 왕 아합왕의 왕후가 된 인물이다[왕상16:31]. 

2. 이세벨은 여자 무당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세벨을 왕후라고 부르지 않고 예언자, 즉 무당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세벨의 고향 시돈 왕국에는 아스다롯 여신 숭배가 굉장히 성행했다. 학자들은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바알과 함께 하는 자라는 뜻)이 바알신과 아스다롯신을 섬기는 사제였다고 하는데, 주님은 그의 딸 이세벨도 신을 모시는 무당이라고 규정하고 계신다.

3. 이세벨은 굉장한 부자였다.
이세벨의 고향 시돈은 두로와 함께 세계 물류와 자본이 몰려드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특히 유리 공예품과 자주색 염료는 시돈의 특산물로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자주색 염료값은 매우 비쌌으며, 자주색 옷감은 명품 중 명품이었다. 그 덕에 시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으며, 사치, 쾌락, 향락이 판을 치는 곳이었다. 이세벨은 그 시돈 왕국의 공주였다. 부와 화려함과 사치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4. 이세벨은 음란한 여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세벨이 성도들을 ‘꾀어 행음하게’ 했다고 말씀하신다[계2:20]. 이는 이세벨이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임을 뜻한다. 바알과 아스다롯 예배에서는 혼음 난무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 영향으로 이세벨도 성적으로 문란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5. 이세벨은 혼합주의자였다.
이세벨은 영적으로도 문란했다.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설득했다. 영적 간음을 부추긴 것이다. 실제로 아합왕 주변에는 바알 사제들도 있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한 400명의 거짓 예언자들도 있었다[왕상22:6]. 즉 이세벨은 필요하면 점도 보고, 필요하면 얼마든지 성전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는 혼합주의자였다.

6. 이세벨은 정략적 목적으로 결혼한 여자였다.
페니키아 시돈 왕국의 공주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7대 왕 아합왕과 정략결혼을 했다. 아합왕은 정치, 군사, 외교적 목적으로 북쪽 페니키아 공주와 결혼했다. 한편 이세벨은 아합왕과의 결혼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고수하는 북이스라엘 왕국에 바알 신앙과 아스다롯 신앙을 확산시킬 목적으로 정략결혼을 했다. 이처럼 아합과 이세벨은 각각의 목적을 따라 정략결혼을 했다.

7. 이세벨은 치명적인 매력의 여인이었다. 
아합왕은 정략적 목적 외에 이세벨의 치명적 매력에도 빠져서 이세벨과 결혼했던 것 같다. 이세벨의 치명적 매력 중에는 강력한 카리스마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죽이러 온 예후 왕을 눈 하나 꿈쩍 않고 곱게 화장을 하고 맞이했던 여자였다[왕하9:31]. 대단한 강심장이다. 850명의 이방 사제에게도 승리했던 엘리야조차 이세벨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쳤을 정도다[왕상19:3]. 이세벨에게는 공포를 유발시키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8. 이세벨은 초법적 존재였다.
이스라엘의 토지법은 전 국민이 골고루 자신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게 했으며, 한 번 정해진 토지 경계선은 영원히 변경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토지 매매는 불가했고 간혹 토지를 사거나 팔더라도 50년마다 희년법에 의해 원상회복하도록 했다. 아합왕은 이스르엘 평야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했지만 토지법 때문에 차마 어찌할 수 없었다. 그 땅을 너무나 갖고 싶었던 나머지 아합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남편 아합왕에게 두 가지를 말한다[왕상21:7]. 첫째, ‘왕이 갖겠다는데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권력에 중독된 초법적 독단과 전횡의 모습이다. 둘째, 왕도 할 수 없는 일을 그녀는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장담했다. 국정 장악력에 대한 자신감이다. 그녀는 초법적 존재였다.

9. 이세벨은 국정 농단을 저지른 여자였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이세벨은 나봇이 사는 마을의 장로들에게 조서를 쓴다. 마을 장로들은 지방 정부의 관료들로서 입법, 행정, 사법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이세벨은 이들에게 공문서를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세벨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작성한 후, 그 조서에 옥새로 인봉했다[왕상21:8]. 이세벨은 국정농단을 저질렀다.

10. 이세벨은 사법농단을 저지른 여자였다.
이세벨은 나봇이 사는 마을의 장로들에게 깡패 2명을 뇌물로 포섭하여 나봇을 거짓으로 고발하도록 사주한다. 죄명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이세벨은 또한 온 마을에 금식을 선포하게 하고, 재판을 열고, 마을 사람들을 참관하게 했는데, 특별히 나봇이 앉은 피고석은 높이 만들라고 요구했다. 법정에 출두한 증인 2명은 나봇을 모해위증을 했으며, 이세벨의 사주대로 판사는 나봇에게 투석형을 선고했다. 나봇은 곧바로 처형되고 이세벨은 땅을 빼앗았다[왕상21:9-16]. 이세벨은 사법 농단을 저지른 여자였다.

11. 이세벨은 법기술자였다.
이세벨은 나봇을 제거하기 위해서 자객을 보낸 것이 아니라 법정에 세웠다. 사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차적이고, 형식적으로 이스라엘 법률을 준수하여 나봇을 제거했다. 깡패를 2명 포섭하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법률이 2인 이상의 증인이 있을 때만 법정에서 증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금식을 선포하게 한 것, 고발, 기소, 공개 재판, 증언, 청취, 판사의 선고 등 일련의 과정은 전부 이스라엘 법률이 정한 대로 합법적으로 진행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수호하라고 내려주신 사법 시스템을 법 기술자인 이세벨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했다.

12. 이세벨은 무속을 제도화한 여자였다.
이세벨 이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종교의 영향을 받아 우상숭배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세벨은 시집오면서 고국에서 수많은 바알과 아세라의 사제들, 무당, 영매들을 데리고 왔다. 엘리야와 대결했던 850명의 사제들은 모두 이세벨이 데리고 왔거나 양성한 자들이었다. 수도 한복판에 바알 신전과 제단이 세워졌으며[왕상16:32], 전국 도처에 무당, 영매, 이교 사제들이 제멋대로 활개를 치며 활동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대결했던 무당들만 850명인데 비해, 오바댜가 구출한 하나님의 참 예언자들의 숫자가 100명 뿐일 정도로 백성들의 신앙은 이세벨 때문에 이방 종교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왕상18:4]

13. 이세벨은 언론을 탄압한 여자였다.
이세벨은 바알과 아세라 사제들을 양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투옥하거나 처형했다[왕상18:4]. 이세벨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언자들을 핍박한 이유는 종교적 이유도 있겠으나 언론 탄압의 목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예언자의 역할은 왕권을 견제하고, 왕이 정도에서 벗어났을 때 이를 비판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의 사간원이나, 오늘날 언론의 역할에 해당했다. 이세벨은 자신과 맞서는 예언자, 곧 언론을 용납하지 않았다. 대신에 왕 주변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거짓 예언자들, 곧 어용 언론을 양성했다[왕상22:6]. 하여 이세벨 시대는 언로가 막히고, 거짓이 진실을 이기는 암흑의 시대였다.

이세벨 이후 이스라엘에서 여호와 신앙은 체계적으로 탄압받고, 우상숭배가 제도적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더이상 점진적 개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예후의 유혈 쿠데타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왕하9:24]. 하지만 쿠데타로도 북왕국은 회생하지 못했고, 이세벨 사후 120년 만에 북왕국은 멸망하고 만다. 한 여성이 국가나 사회, 교회에 끼칠 수 있는 해악이 얼마나 크고 막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죽었다. 하지만 이세벨은 다시 되살아났다. 이세벨의 딸 아달리야가 그렇고, 1천 년 뒤, 두아디라 교회에서도 되살아나서 두아디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를 명확하게 분별하지 못한 채 소극적으로 방임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두아디라 교회를 향해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세벨은 오늘 한국교회에 또다시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한국교회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손 놓고 방관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교회는 명확히 이를 분별해야 할 때다.

“한국교회여, 여자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지 말라.” 


귀 있는 자는 한국교회에 전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지어다!

 

 

 

[CBS 뉴스] 윤석열 무속 정치 논란 비판 봇물

 

 

 

성경 속의 부동산 투기:2세기 초대교회 vs. 21세기 한국교회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4, 5장 해설

 

 

도대체 교회란 무엇인가? 바른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요즈음입니다. 2세기 경의 문서로 추정되는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당시 초대교회의 모습이 어떠했으며,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 모습에 한국 교회의 모습을 비추어 보겠습니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제 4, 5장

 

Chapter 5. The manners of the Christians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과 국가나 언어, 관습으로 구별되지 않으며, 
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들만의 도시에 따로 살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말하지도 않으며,
그들은 비기독교인이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 양식은 철학적인 사상의 깊은 숙고나 사유를 통해 이끌어 낸 것도 아니고,
일부 사람들이 그러하듯 인간적으로 만들어 낸 교리를 전파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문명화된 그리스에 거주하건, 비문명화된 야만인의 땅에 살건,
그 지역의 문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입니다.
의복 문화, 음식 문화, 그 밖의 여러 가지 문화들을 
보통 사람들 기준으로 그들이 하는 대로 문화를 따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놀랍고도 충격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각자 자신들의 국가에 살지만 다른 나라 사람처럼 삽니다.
국가의 시민으로서 그들은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모든 의무를 다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외국인이나 되는 것처럼 모든 불리한 사항들을 참아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외국을 자신의 조국으로 여기고, 
자신의 조국을 모든 외국으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식탁의 음식은 공유하지만, 침실은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을 입고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들은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들은 현행법을 준수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법이 요구하는 그 이상의 삶을 삽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들을 비난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에 처하지만 하나님이 생명으로 다시 살리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자원이 궁핍하지만, 모든 것이 풍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존중받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존중받지 못한 바로 그곳에서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하다는 말을 듣지만,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경멸을 받지만, 도리어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멸시를 당하지만, 멸시하는 자를 존중함으로 되돌려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선을 행하지만, 마치 악인인 듯 처벌당합니다.
그들이 처벌받을 때, 생명을 얻는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들은 유대인에게는 외국인처럼 적대시당하고, 헬라인들에게는 핍박을 당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이 그리스도인을 증오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왜 자신들을 미워하는지 정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Chapter 6. The relation of Christians to the world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인과 세상의 관계는 영혼과 육체의 관계와 같습니다.
영혼이 우리 몸 속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영혼이 육체에 거하지만 육신에 속하지 않듯, 
그리스도인도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보이는 육신 안에 거하듯,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경건은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은 육체에 고통을 가하지 않지만 육체는 영혼을 미워하고 적대시합니다.
이는 영혼이 육체의 쾌락 추구를 막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지 않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쾌락들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영혼을 미워하지만 영혼은 자신을 미워하는 육체와 그 모든 지체를 사랑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미워하는 모든 세상 사람을 사랑합니다. 
영혼이 육신에 갇혀 있지만 영혼은 육신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치 감옥처럼 세상 안에 갇혀 있지만,
그들은 세상을 떠받들고 있습니다. 
불멸의 영혼이 필멸의 장막 안에 거하듯이, 
그리스도인도 썩어  없어질 이 땅에 나그네처럼 거하고 있습니다. 
장차 영원히 썩지 않는 하늘의 처소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
음식과 음료를 줄이면 영혼이 더욱 강해지듯, 
그리스도인들은 핍박을 받으며 매일 그 수가 증가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무르라고 명령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은 이 자리를 버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Chapter 5. The manners of the Christians

 

For the Christians are distinguished from other men neither by country, nor language, nor the customs which they observe. For they neither inhabit cities of their own, nor employ a peculiar form of speech, nor lead a life which is marked out by any singularity. The course of conduct which they follow has not been devised by any speculation or deliberation of inquisitive men; nor do they, like some, proclaim themselves the advocates of any merely human doctrines. But, inhabiting Greek as well as barbarian cities, according as the lot of each of them has determined, and following the customs of the natives in respect to clothing, food, and the rest of their ordinary conduct, they display to us their wonderful and confessedly striking method of life. They dwell in their own countries, but simply as sojourners. As citizens, they share in all things with others, and yet endure all things as if foreigners. Every foreign land is to them as their native country, and every land of their birth as a land of strangers. They marry, as do all [others]; they beget children; but they do not destroy their offspring. They have a common table, but not a common bed. They are in the flesh, but they do not live after the flesh. 2 Corinthians 10:3 They pass their days on earth, but they are citizens of heaven. Philippians 3:20 They obey the prescribed laws, and at the same time surpass the laws by their lives. They love all men, and are persecuted by all. They are unknown and condemned; they are put to death, and restored to life. 2 Corinthians 6:9 They are poor, yet make many rich; 2 Corinthians 6:10 they are in lack of all things, and yet abound in all; they are dishonoured, and yet in their very dishonour are glorified. They are evil spoken of, and yet are justified; they are reviled, and bless; 2 Corinthians 4:12 they are insulted, and repay the insult with honour; they do good, yet are punished as evil-doers. When punished, they rejoice as if quickened into life; they are assailed by the Jews as foreigners, and are persecuted by the Greeks; yet those who hate them are unable to assign any reason for their hatred.

 

Chapter 6. The relation of Christians to the world

 

To sum up all in one word what the soul is in the body, Christians are in the world. The soul is dispersed through all the members of the body, and Christians are scattered through all the cities of the world. The soul dwells in the body, yet is not of the body; and Christians dwell in the world, yet are not of the world. The invisible soul is guarded by the visible body, and Christians are known indeed to be in the world, but their godliness remains invisible. The flesh hates the soul, and wars against it, 1 Peter 2:11 though itself suffering no injury, because it is prevented from enjoying pleasures; the world also hates the Christians, though in nowise injured, because they abjure pleasures. The soul loves the flesh that hates it, and [loves also] the members; Christians likewise love those that hate them. The soul is imprisoned in the body, yet keeps together that very body; and Christians are confined in the world as in a prison, and yet they keep together the world. The immortal soul dwells in a mortal tabernacle; and Christians dwell as sojourners in corruptible [bodies], looking for an incorruptible dwelling in the heavens. The soul, when but ill-provided with food and drink, becomes better; in like manner, the Christians, though subjected day by day to punishment, increase the more in number. God has assigned them this illustrious position, which it were unlawful for them to forsake.

 

 

[고백 Message] 하나님의 법과 국가의 법이 충돌할 때:

복음적 가치와 정치 이념을 혼동하는 이들에게

 

 

광화문 집회 옹호자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지금 현재상황을 하나님의 법과 국가의 법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따르기 위해서 국가의 법에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성경 속의 부동산 투기: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와 야훼 신앙

 

 

산업화된 이후부터 한국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부동산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는 사실을 아는 크리스천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이스라엘의 토지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것이 현대 크리스천과 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제목: "(현장) 예배는 생명이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예배

설교자: 신광은 목사(열음터 교회, 고백 아카데미 공동대표)

 

 

 

 

 

 

+ Recent posts